원장 칼럼 · 이훈석 › 검사는 정상인데 불편합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불편합니다

항노화 2 / 4

이름 붙일 수 없는 구간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상황이 있습니다. 혈액검사도 소변검사도 영상도 정상 범위인데, 환자분은 분명히 불편하다고 하십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대답이 잘 안 나옵니다. 그냥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한의학과 한약을 예방의학의 범주로 이해하시는 분이 많은데, 일부만 맞습니다. 한의학의 특징은 예방보다는 아직 지표에 잡히지 않는 이탈을 다룬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소문·사기조신대론』에 "성인은 이미 생긴 병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생기지 않은 병을 치료한다(聖人不治已病治未病)"는 구절이 있습니다. 치미병(治未病)이라는 이 개념은, 병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으나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구간을 다루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혈액검사는 본질적으로 전신 평균치입니다. 국소에서 진행 중인 변화는 상당히 진행되기 전까지 평균을 흔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 구간을 세 개의 층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세포, 조직, 그리고 전신

첫 번째 층은 세포 안입니다. 세포 내 수분이 줄거나 감염·대사 스트레스가 걸리면 세포는 그 자체로 기능이 달라집니다. 이건 은유가 아닙니다. 간세포 생리에서는 세포의 부피 자체가 대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신호로 작동한다는 것이 오래 연구되어 왔습니다. 세포가 부풀면 물질을 만드는 쪽으로, 쪼그라들면 분해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두 번째 층은 세포 바깥, 조직입니다. 개별 세포의 기능 저하가 누적되면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이 반응합니다. 콜라겐의 가교 결합이 늘어 조직이 뻣뻣해지고, 수분 보유력이 떨어지고, 국소 염증 신호가 상주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 환자는 뻐근함, 결림, 회복 지연 같은 형태로 처음 자각합니다.

세 번째 층에서야 전신 지표가 움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검사라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여기서부터 반응합니다.

혈액검사도 세포를 직접 보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촉진으로 세포를 본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숙련된 시술자가 손으로 읽는 것은 조직의 탄성, 온도, 습윤도, 압통 역치 같은 두 번째 층의 신호입니다.

다만 혈액검사 역시 세포를 직접 보지 않습니다. AST와 ALT는 간세포 안에 있던 효소가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고, CK는 근세포에서, LDH는 어디서든 새어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서도 세포를 직접 관찰하지 않았고, 세포가 남긴 흔적을 읽었을 뿐입니다.

즉 둘 다 간접 지표이고, 차이는 직접성이 아니라 해상도와 시점입니다. 혈액검사는 세포막이 깨질 만큼 진행되어야 잡히지만 정량적이고 재현성이 높습니다. 조직 촉진은 그보다 이른 시점을 잡고 부위 특이도가 높지만 정량화가 어렵습니다. 어느 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층을 다른 해상도로 보는 것이고, 그래서 두 정보는 서로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이 관점은 현대 노화생물학과도 접점이 있습니다. 2013년 제시되어 2023년 12가지로 확장된 '노화의 특징(Hallmarks of Aging)'에는 만성 염증(inflammaging), 세포 간 소통의 교란, 단백질 항상성 붕괴가 포함됩니다. 어느 하나 단일 검사 수치로 환원되지 않고, 하나같이 세포와 그 주변 환경의 문제입니다.

한약은 안티에이징이다 — 다만 겉이 아니라 안의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한약이 안티에이징 상품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외모의 안티에이징이 아니라 기능의 안티에이징입니다.

지속적으로 피부과를 다니는 사람은 제 나이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은 그에게도 똑같이 흘렀지만 표면에 남은 흔적은 다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고, 아무도 그것을 사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같은 논리가 안쪽에는 적용되지 않아야 할까요.

피부과가 관리하는 것은 진피의 콜라겐과 표피의 광노화, 즉 보이는 층의 세포외기질입니다. 한약이 겨냥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층의 같은 문제이고, 앞서 말한 세 층 중에서도 가장 안쪽, 세포 자체의 상태입니다. 소화관의 점막, 혈관 내피, 근육과 근막 사이의 결합조직. 층위가 다를 뿐 대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얼굴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는 속도, 밤에 깨는 횟수, 하루가 끝날 무렵 남아 있는 여력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깨우는 것

작용 방식에 대해서도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한약이 세포에 작용하는 방식은 부족한 것을 채워 넣는 보충이라기보다, 경미한 자극을 주어 세포의 대응 능력을 끌어올리는 쪽에 가깝다고 봅니다.

노화생물학에는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이미 있습니다. 제노호르메시스(xenohormesis)는 식물이 스트레스 환경에서 만들어낸 이차대사산물이 이를 섭취한 동물의 세포에 약한 스트레스 신호로 작용해, 항산화·해독·복구 경로를 미리 켜둔다는 가설입니다. 폴리페놀이나 설포라판의 작용을 설명할 때 쓰이는 틀입니다.

구체적인 경로도 겹칩니다. 항산화·해독 유전자군을 일괄 유도하는 Nrf2 경로, 에너지 대사를 재조정하는 AMPK와 시르투인, 손상 단백질을 처리하는 열충격반응. 상당수 한약 성분이 이 경로들의 활성화제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계지의 신남알데하이드, 생강의 진저롤처럼 감각신경의 TRP 수용체에 작용하는 성분들은 투여 후 이른 시간에 나타나는 신경원성 반응을 설명하는 후보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한약이 겨냥하는 것은 세포를 대신해주는 일이 아니라 세포가 스스로 버티는 힘,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노화란 결국 이 회복탄력성이 서서히 줄어드는 과정입니다.

사진에 찍히지 않는 것들

WHO는 최근 '노년'이라는 진단 항목을 폐기하고 내재역량의 저하라는 표현으로 대체했습니다. 이동성, 활력, 인지, 감각, 심리. 이 다섯 가지는 사진에 찍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구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정확히 이 다섯 가지입니다. 기능적 안티에이징이란 이 다섯 개의 잔량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일이고, 저는 그것이 한의학이 원래부터 해오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바이오해킹 역시 결국 측정하고, 개입하고, 다시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한의학은 수치가 이탈하기 전 단계의 기능 상태를 읽고 개입해온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언어가 다를 뿐 겨냥하는 지점은 겹칩니다.

다만 지향이 분명한 것과 근거가 충분한 것은 다릅니다. 한약이 노화 속도 자체를 늦춘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아직 축적 중입니다. 노쇠(frailty)와 근감소증에 대한 한약 연구가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쌓이고 있지만 대부분 예비적 단계이고, 대규모 장기 추적은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전신 기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조직이 감당하는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은 제가 임상에서 갖게 된 가설이고, 저는 이 가설이 맞다고 보지만, 아직 검증된 결론은 아닙니다. 그 구분을 흐리지 않는 것이 이 논의를 상업적 수사에서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