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칼럼 · 이훈석 › 오래 사는 시대가 아니라, 오래 앓는 시대

오래 사는 시대가 아니라, 오래 앓는 시대

항노화 1 / 4

18년이라는 숫자

2024년 생명표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7년입니다. 그런데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은 기간을 뺀 '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은 65.5년에 그칩니다. 차이는 18.2년. 생애의 약 21%를 어딘가 아픈 채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백세시대라는 말은 이제 축복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그 마지막 18년을 어떤 상태로 통과하느냐로 옮겨왔습니다.

진료실에서 이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게 해주시는 분들은 간병을 경험해보신 분들입니다. 부모님을 몇 년간 돌봐본 분들은 예외 없이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저렇게 되면 애들이 힘들 텐데." 이분들의 건강관리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자, 동시에 자녀에게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존은 이미 전제가 되었고, 이제 관심사는 삶의 질과 자립입니다.

한때 널리 회자된 '저속노화' 담론이 그토록 빠르게 퍼진 것도 이 불안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화는 질병인가 —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

노화 자체를 하나의 질병으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되돌릴 수 있는 과정인가. 이 질문에 지난 10여 년간 막대한 자본이 유입됐습니다. 구글(알파벳)의 칼리코, 30억 달러 규모로 출범한 알토스 랩스, 샘 올트먼이 투자한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시스 같은 회사들이 세포 리프로그래밍과 노화세포 제거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당수는 아직 동물실험 단계이고, 인체 적용까지의 거리는 결코 짧지 않습니다.

제도권의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는 ICD-11에 'Ageing-Related'(XT9T)라는 확장코드를 도입했습니다. 노화를 '질병의 원인'으로 코딩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노화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과 보험 적용의 길을 여는 조치였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번 뒤집힙니다. 연령차별(ageism)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WHO는 'old age(노년)' 항목을 철회하고 이를 "내재역량의 노화 관련 저하(ageing associated decline in intrinsic capacity)"로 대체했습니다. XT9T의 설명도 '병리적'에서 '생물학적' 노화 과정으로 조정됐습니다.

저는 이 수정이 오히려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국제 표준의 무게중심이 '어떤 병에 걸렸는가'에서 '전신 기능의 총량이 얼마나 남았는가'로 이동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WHO가 말하는 내재역량은 이동성·활력·인지·감각·심리의 다섯 영역을 통합적으로 봅니다. 단일 장기의 이상이 아니라 사람 전체의 여력을 보는 방식입니다.

한의학이 경험하지 못한 구간, 그리고 이미 아는 구간

한의학을 흔히 노년기 의학이라고들 하십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조심스럽습니다.

한의학의 주요 문헌이 축적되던 시기, 유아기를 넘긴 사람의 평균적인 수명은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언저리였습니다. 『황제내경』이 남자의 생식 기능이 소진되는 시점을 8×8, 즉 64세로 잡은 것도 그 시대의 신체 감각을 반영합니다. 지금의 85세 이후 초고령 구간은 고전 문헌이 통계적으로 경험해본 적 없는 영역입니다. 이 점은 정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년 자체가 낯선 대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북송의 진직이 1085년 무렵 저술한 『양로봉친서(養老奉親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노년의학 전문서로 평가받습니다. 노인의 소화력, 수면, 정서, 계절별 섭생을 따로 다룬 책입니다. 즉 한의학에는 노쇠를 독립된 임상 범주로 다뤄온 천 년의 축적이 있고, 다만 그 축적이 다루던 연령대의 상한이 지금보다 낮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명은 고전이 다뤄본 적 없는 구간까지 늘어났고, 국제 표준은 병명 대신 남은 기능의 총량을 보기 시작했으며, 한의학에는 노쇠를 독립적으로 다뤄온 축적이 있습니다. 세 가지가 만나는 자리에 지금의 질문이 있습니다.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속도와 부담을 조절하려는 시도만큼은, 지금 우리가 가진 도구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검사는 다 정상이라는데 분명히 불편한 상태, 그 구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