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는 부피로 말한다
부피가 곧 신호다
간세포 생리에서 오래 연구된 '세포 수화 상태(cell hydration stat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세포가 팽윤하면 동화 방향으로, 위축하면 이화 방향으로 대사 신호가 기웁니다. 세포의 부피 자체가 일종의 전령처럼 작동하는 것입니다.
언뜻 거꾸로 들립니다. 부푼 세포가 물질을 더 만들어내면 더 부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항상성이라면 반대여야 말이 되지 않느냐고요.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삼투압은 용질의 무게가 아니라 개수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동화작용은 정의상 작은 분자 여러 개를 큰 분자 하나로 묶는 일입니다.
포도당 수만 개가 글리코겐 한 분자가 됩니다. 아미노산 수백 개가 단백질 한 분자가 됩니다. 유리지방산 셋과 글리세롤 하나가 중성지방 한 분자가 됩니다. 저장된 물질의 총량은 늘어나지만 삼투 활성 입자의 수는 급감합니다. 그래서 물이 빠져나가고 부피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글리코겐은 이 원리의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세포 안에 막대한 양의 포도당을 저장하면서도 삼투압을 거의 올리지 않는 형태이고, 애초에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반대 방향도 같습니다. 위축된 세포에서 이화가 켜지면 큰 분자가 잘게 쪼개지면서 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물이 들어옵니다. 겉보기와 달리 정확한 음성 되먹임입니다.
- 팽윤 → 동화 → 입자 수 감소 → 물 유출 → 부피 회복
- 위축 → 이화 → 입자 수 증가 → 물 유입 → 부피 회복
왜 하필 부피인가
되먹임이 성립한다는 것과, 세포가 왜 굳이 부피를 대사 스위치로 삼는지는 다른 질문입니다.
간세포를 부풀리는 생리적 원인은 나트륨 의존성 아미노산 흡수입니다. 식후에 아미노산이 밀려 들어오면 삼투적으로 물이 따라 들어와 세포가 부풉니다. 인슐린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글루카곤은 반대로 위축시킵니다.
그러니 세포 입장에서 팽윤은 곧 "기질이 풍부하다"는 신호입니다. 그 상태에서 동화로 기우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반대로 굶거나 탈수되면 세포가 위축되고, 이화와 자가포식(autophagy)이 켜집니다. 자가포식이 세포 위축에 의해 촉진되고 팽윤에 의해 억제된다는 것도 같은 계열의 관찰이며, 공복이 자가포식을 유도한다는 널리 알려진 사실과도 맞물립니다.
부피 조절에는 두 개의 팔이 있습니다. 이온 수송체와 유기삼투질(타우린, 베타인, 미오이노시톨)이 담당하는 빠른 팔은 수 초에서 수 분 단위로 작동합니다. 대사 방향의 전환은 그 위에 얹히는 느린 팔로, 수 분에서 수 시간이 걸립니다. 두 팔이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문제는 만성적 위축입니다
되먹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한 부피는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문제는 복구되지 못하고 위축이 눌러앉을 때입니다.
만성적으로 위축된 세포는 지속적으로 이화 쪽에 기울어 있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세포 내 수분이 줄면 단백질의 상대 농도가 올라가면서 효소 반응 속도와 단백질 접힘 양상이 달라지고, 응집 경향이 증가합니다. 거대분자 밀집(macromolecular crowding)이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노화한 세포의 수분 함량이 낮다는 것은 오래된 관찰입니다. 소모성 질환과 노화에서 나타나는 이화 경향을 세포 위축과 연결지어 설명하려는 시도 역시 이 계열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조건을 바꾸는가
되먹임이 다시 돌게 하려면 세포가 놓인 조건을 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세포는 혈관 안에 있지 않습니다. 혈관과 세포 사이에는 간질이라는 공간이 있고, 혈액을 타고 온 물질이 세포에 닿으려면 이 공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저는 한약의 작용에서 이 통과 지점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혈관 주위 결합조직에는 비만세포(mast cell)가 상주합니다. 비만세포가 탈과립하면 히스타민과 트립타제가 방출되고, 혈관 투과성이 올라가면서 혈장 성분이 간질로 빠져나옵니다. 혈액에 있던 것이 조직으로 들어가는 물리적 통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트립타제와 키마제는 섬유아세포에 작용해 세포외기질을 재편합니다. 문을 열면서 방을 고치는 셈입니다.
한약을 투여했을 때 이른 시간에 나타나는 반응들 — 국소의 온감, 발적, 부기, 일시적인 불편감 — 은 겉보기에 알레르기 반응과 닮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부작용의 신호라기보다 이 통로가 열리는 과정 자체라고 봅니다.
알레르기와 유사알레르기
다만 용어는 정확해야 합니다. 이 반응은 알레르기가 아닙니다.
전형적인 알레르기는 IgE를 매개로 하고, 사전 감작이 필요하며, 재노출마다 반응이 증폭됩니다. 반면 IgE를 거치지 않고 비만세포를 직접 활성화하는 경로가 따로 존재합니다. MRGPRX2 수용체를 통한 활성화가 대표적이고, 학계에서는 이를 유사알레르기반응(pseudo-allergic reaction)이라 부릅니다. 여러 약물과 펩타이드가 이 경로로 작용하며, 중약주사제의 반응 연구에서도 다뤄져 온 주제입니다.
차이는 임상적으로 결정적입니다.
| IgE 매개 알레르기 | 유사알레르기 | |
|---|---|---|
| 사전 감작 | 필요 | 불필요, 첫 노출에도 발생 |
| 용량 관계 | 미량에도 반응 | 용량 의존적 |
| 재노출 | 반응이 증폭 | 증폭되지 않음 |
| 임상적 성격 | 회피해야 할 병리 | 조절 가능한 반응 |
용량 의존적이고 재노출에 증폭되지 않는다는 것은, 조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처방의 강도와 간격을 조정해 반응의 폭을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치료 변수입니다. 한의학이 오래 축적해온 것도 결국 이 조절의 감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피로 돌아오면
그리고 이 이야기는 처음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혈장 성분이 간질로 빠져나오면 간질액의 조성과 삼투 환경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곧 세포가 부피를 판단하는 조건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만성적으로 위축된 채 이화 쪽에 눌러앉아 있던 세포에게, 바깥 환경의 변화는 되먹임을 다시 시작할 계기가 됩니다.
세포를 대신해 물질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닙니다. 세포가 스스로 방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 주변 조건을 흔들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한약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남는 질문
정직하게 경계를 그어두겠습니다.
세포 수화 상태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간세포 모델에서 축적된 것이고, 근골격계나 결합조직으로 그대로 외삽할 수 있는지는 아직 직접적인 근거가 얇습니다. MRGPRX2 관련 자료 역시 주사제와 시험관 연구에 치우쳐 있어, 경구 투여되는 탕약에 같은 비중으로 적용된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는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정합적인 가설입니다.
다만 가설의 모양은 분명합니다. 세포는 자신의 부피로 영양 상태를 읽고 대사 방향을 정하며, 그 판단을 되돌리는 되먹임 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장치가 멈춰 선 자리에서 개입해야 할 것은 대사의 방향 자체가 아니라, 되먹임이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세포 안이 아니라 세포 바깥에서 만들어집니다.